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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

1.

  어렸을 때는 개구쟁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이 사실이 믿기 힘든 모양이다. 나처럼 젠틀하고(?) 지적인(??) 사람과 개구쟁이는 잘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내게 묻는다.


  "아니, 그럼 어쩌다 성격이 그렇게 변한 거예요?"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한 소녀를 알게 되면서 부터였죠..."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자꾸 그 말을 하다보니 '정말 한 소녀를 안 후부터 내 성격이 변해버린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어쨌든 사람들도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다만 얼렁뚱땅 대충 넘어가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사실 나는 내 성격이 변한 이유를 알고 있다. 바로 그 일이 있은 후였기 때문이다. 그 일은 여름방학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어느 저녁에 불현듯 일어났다. 나는 그때 그 일이 내 인생을 완전 바꿔놓게 될 줄은 정말 몰랐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입을 꼭 닫고 있었다. 그 일에 대해 누군가 금지령을 내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 이 순간 그 일에 대해 최초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언제 어느 순간 사라질지도 모를 운명을 안고 태어난 셈이다.




2.

 그 일이 있던 날 저녁 나는 싸구려 망원경으로 서서히 어두워져 가는 서녘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집 옥상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면 서울과 제주도를 왕복하는 비행기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때도 난 망원경으로 비행기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막 내 망원경 속으로 들어온 비행기 한 대가 공중에 멈춰있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나는 망원경을 내려놓고 눈을 비빈 후 다시 맨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내 눈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면 비행기는 분명 공중에 떠있었다.


 헬리콥터인가? 내가 아무리 어린 학생이었어도 비행기가 공중에 멈춰 서있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헬리콥터라면 프로펠러가 있어야 할텐데 내 눈에는 프로펠러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정말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행기에서 빛이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그 빛은 직선으로 내려와 땅에 꽂히지 않고 스타워즈에 나오는 레이저 검처럼 어느 부분에서 뚝 끊겨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후레쉬를 하늘에 비추면 그 빛은 일직선으로 우주까지 날아간다고 들었다. 빛은 절대 중간을 자를 수 없다. 나는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싶었다. 허벅지를 세게 꼬집어 봤다. 젠장, 아팠다. 분명 꿈은 아니다.




3.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아마 평생 그 기억, 그 느낌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난 또래 아이들에 비해 약간 더 용감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도 결코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담담했다.

 사실 난 외계인의 존재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때가 되면 외계에서 나를 데리러 올 거라는 걸 은근히 믿고 있었다.




4.

 빛은 어느새 내 머리 위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빛은 순식간에 나를 감싼 것이다. 눈부셨다. 그 빛은 너무 눈부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음과 동시에 내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묘했다. 나는 두려움에 발버둥치지도 않았고 무서워 소리내어 울지도 않았다. 그저 빛에게 내 몸을 맡겼다. 편안했다. 이제야 내 존재가 찬연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5.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사방이 온통 하얀 방안에 누워있었다. 내 머리 위로는 밝은 빛이 쏟아져 한동안 눈을 뜰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그 비행체 안인 모양이었다. 실내의 풍경은 굉장히 낯설었다. 나를 비행선에 태운 이들은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에서 온 외계인일 것이다. 우리와는 문화와 가치관이 전혀 다른. 나는 그들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어쩌면 눈이 세 개 이상 달렸을지도 모를 그들.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내 입에서는 아! 하는 짧은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어떻게 우리의 언어를 알고 바로 통역해서 말을 할까. 내가 또 한국어를 쓴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그들은 분명 엄청나게 발달된 문명을 갖고 있는 외계인일 것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내 시야에는 온통 하얀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서있는게 보였다. 우리로 치면 분명 일반적인 미인의 외모였다. 하지만 난 직감적으로 그녀가 외계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몸에선 빛이 조금씩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어느별에서 오신 분이세요?"


 나는 그 외계인에게 물었다. 외계인은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언젠가 꿈에서 본 것 같은 아름다운 미소였다.

 "제가 왜 누워있는 거죠?"

 나는 다시 한 번 외계인에게 물었다. 그제서야 외계인은 입을 열었는데, 그때 외계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기절하셨어요. 번개치는 걸 보고 기절하신 거예요. 잠시 정신을 잃은 거니까 주사 한 방 맞으면 금방 나으실 거예요."




6.

 주사는 깔끔하게 딱 한방이었다. 주사를 다 맞은 후 내 눈엔 눈물이 핑 돌았는데, 주사가 아파서였는지 아니면 허탈해서였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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