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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울부짖는 협곡

 소년이 어렸을 때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포효하는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다. 괴물은 소년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산맥 너머에 살고 있었지만 그가 내지르는 괴성은 바람을 타고 소년의 집에까지 울려퍼졌던 것이다.

 

 소년이 살고 있는 마을은 겉으로 보기엔 매우 평화롭게 보였다. 하지만 마을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산맥의 뒷편에는 오래전부터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었다. 과거부터 괴물은 시도 때도 없이 슬금슬금 산맥을 넘어와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다. 농작물을 파헤치는 것은 기본이고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을 마구 잡아먹었다. 눈알이 파헤쳐 지고 창자가 터져 죽어있는 가축들의 사체들을 보며는 괴물이 얼마나 포악한 놈인지 알 수 있었다. 괴물의 횡포는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괴물은 마을 사람까지 해치기 일쑤였다.

 

 괴물의 횡포가 줄어든 건 백 년 전부터였다. 백 년 전 마을에서는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마을을 괴롭히는 괴물의 횡포를 막고자 덕망 높은 마을의 노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회의의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매년 여름이 시작되는 날에 마을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처녀를 괴물에게 바치자는 것이었다. 곧바로 다음 해부터 회의 내용이 실행에 옮겨졌다. 물론 그로 인해 괴물의 횡포가 줄어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매년 여름이 되면 꽃다운 처녀 하나가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초기에는 이 제도에 반항하던 가족이 나타났다. 제물로 바쳐지게 될 쳐녀의 가족이었다.  그 가족은 어느 날 밤 딸을 데리고 마을을 몰래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마을은 커다란 산맥과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탈출이 쉽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발각된 가족은 참형을 받았고, 처녀는 예정대로 제물로 바쳐졌다. 이 사건 이후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소년의 나이는 열 일곱. 소년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소리에 민감하다는 것을 알 고 있다. 일 예로 소년은 새가 우는 소리를 듣고 슬퍼서 우는 지, 기뻐서 우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어느 날 소년은 친구들과 강가에서 고기를 잡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정신이 팔리고 만다. 소년은 홀린 듯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간다. 운명처럼 소년이 발견한 건 '단영'이라는 소녀. 고운 목소리를 타고난 단영은 곧 있을 마을축제에서 노래를 부르기로 되어 있었다.

 

 해다마 여름이 시작되기 직전에 열리는 마을 축제는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여느 축제와 마찬가지로 밝은 얼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축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얼굴이다. 왜냐하면 축제 말미에 그해 제물로 바쳐질 처녀가 발표되기 때문이다.

 

 소년은 마을축제때 또 다시 단영 노래를 듣고 거기에 빠져들고 만다. 단영 목소리는 소년을 빠져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날 소년은 단영에게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고 만다. 그러나 그날 축제에서 단영그해 제물로 선정된다. 단영 얼굴은 슬픔으로 일그러졌고, 그녀의 가족은 오열한다. 소년은 단영에게서 깊은 연민을 느낀다.

 

 단영 제물로 바쳐지기 전날 밤. 소년은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단영과 그 가족들에게 괴물로부터 그녀를 꼭 구해오겠다고 약속한다.

 

 제사장과 졸개들이 제물인 처녀를 데리고 제단으로 가는 데는 꼬박 삼 일이 걸린다. 높고 험준한 산맥을 거쳐 깊은 협곡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소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일행들 몰래 단영 뒤를 좇는다.

 

 단영 제단에 묶어놓고 제사장과 일행들이 사라지자 소년은 구출 작전을 시작한다. 하지만 바로 그때 괴물이 나타나 단영 풀어주려던 소년을 공격한다. 소년은 괴물에 격렬하게 저항한 끝에 창으로 괴물의 한 쪽 눈을 찌른다. 그러나 소년은 괴물의 일격을 받고 정신을 잃고 만다.

 

 소년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그러나 단영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단에는 단영 묶여 있던 동화줄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소년은 단영의 행방을 찾아 산맥의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 소년은 깊은 산속에 사는 괴상한 생명체의 공격과 배고픔과 외로움 속에서도 계속해서 단영을 찾아 헤맨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자신의 뒤를 몰래 뒤쫓아오던 괴물의 습격을 받고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한 사내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한다. 그의 이름은 규. 규는 엄청난 무술 실력을 갖고 있다. 그가 소년처럼 산속을 떠도는 이유는 단영처럼 제물로 바쳐진 그의 누이를 찾기 위해서다. 조실부모한 규에게 있어 누이는 부모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서로의 목적이 같음을 확인한 소년과 규는 둘이 한 목숨처럼 합세해 괴물을 죽일 것을 다짐한다.  

 

 마침내 소년과 규는 괴물의 본거지를 확인하고 그를 죽일 작전에 돌입한다. 결국 둘의 힘으로 괴물을 협곡으로 떨어트려 죽이고 그의 실체를 밝혀낸다. 괴물은 원래 소심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흠모하던 처녀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세상을 원망하다 괴물이 되고 만 것이다. 괴물은 협곡으로 떨어져 죽으면서 크게 울부짖는다. 성한 한 쪽 눈으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괴물을 물리친 소년과 규는 단영과 규의 누이를 구하고 마을로 돌아 간다. 넷은 소년의 마을에서 함께 살기로 한다. 마을에 도착한 이들은 괴물은 죽었으며, 더 이상 귀중한 처녀를 제물로 바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마을 사람들은 환호한다.

 

 괴물은 죽었지만 소년은 가끔 잠이 안 오는 밤에 산맥 너머를 아득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러면 괴물이 협곡으로 떨어져 죽어가면서 내지르던 울부짖음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그럴 때마다 소년은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때가 공포의 감정이었다면 지금은 연민의 감정이다. 

 이제는 소년의 각시가 된 단영은 그런 소년의 마음을 감싸안아 준다. 소년은 이미 어른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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