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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사랑한 걸까> 나카지마 요시미치

 나의 아들이 어렸을 때 한밤중에 갑자기 울기 시작한 적이 있었다. 냉장고에는 한 방울의 우유도 없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얼어붙을 듯이 추운 겨울밤이었다. 집 근처 가게를 닥치는 대로 찾아다녔지만 문을 연 곳은 없었다. 얼어버릴 것 같은 몸을 이끌고 30여 분 동안 양손을 호호 불면서 아들에게 먹일 우유를 찾았다. 그리고 스스로 내 자신의 그 희생적인 행동에 감동했다.

 무의식중의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인 것이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스스로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런 내 자신에게 극심한 혐오감을 느꼈다. 


(40p.)


*


 내 아이라 할지라도 넘어진 순간에 나도 모르게 쫓아가서 안아주지 못한다. 아내가 "아야!"라고 소리친 순간, 반사적으로 "왜 그래?"라고 못한다. 그 순간 내 몸은 얼어붙고 시련에 부딪힌 것처럼 꼼짝도 못하게 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눈앞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누군가'를 구해주고 싶다. 그때 돕지 않으면 내 명예가 훼손된다든가, 나중에 꺼림칙할 거라든가,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것이라는 등의 공리적 이유가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가 아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보는 순간 내 안으로 이성적 판단이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와 그 '누군가'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동정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마술처럼 '누군가'를 도와야만 된다는 이성적 판단이 대신 들어서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에게 감사받을 만한 일을 했어도, 감사받는 것을 싫어한다. 아니,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혐오감을 느낀다. 그러나 상대방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한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암초에 부딪힌다. 남을 구제하는 일(돕는 일, 친절을 베푸는 일)의 어려움을 재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좀 더 곤란한 경우도 있다. 나는 내가 이렇듯 비뚤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투영되어 남의 선의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비뚤어지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빵이 한 조각밖에 없을 때, 나는 아마 눈앞에 있는 굶주린 아이에게 그것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행위를 '사랑 때문에' 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내가 사랑이라는 말에 합당한 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외형적인 사랑이며 그런 사랑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내 자신을 좀 더 책망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고통스러워 사람과 부딪힐까 봐 두렵다. 나를 시험하려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괴로워하는 사람의 눈은 날카롭다. 반사적인 나의 '친절한' 태도 속에서 내 진의를 꿰뚫어보는 것 같아 두렵다. 나의 곰살궂은 행동 이면에 있는 냉정한 시선을 발견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내가 아무리 연기를 열심히 해도 그 기교는 들키고 만다. 사실 상대방은 내 마음을 꿰뚫어볼 것이다.


(41, 42p.)



 * 나카지마 요시미치라는 사람이 내 도플갱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현미경으로 내 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기묘하고 이상한 경험이었다. 차마 세상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얘기를 무려 한 권의 책을 통해 저자는 고백하고 있다.(혹은 고백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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